태초에 혼돈만이 가득했다.

상하좌우도 동서남북도 분명치 않은 혼돈이 계속되던 어느 때, 하늘 가운데 주인된 신, 미나카누시(天之御中主神,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가 나타나 높은 하늘 언덕, 타카마노하라(高天原)에 자리를 잡고 세상을 열었다.

이윽고 창조의 신, 타카미무스히(高御産巢日神, 타카미무스히노카미)가 나타나 세상에 내놓을 만물의 형상을 그렸고, 뒤이어 생성의 신, 칸무스히(神産巢日神, 칸무스히노카미)가 나타나 그와 짝을 이루어 만물의 씨앗을 빚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여전히 혼돈으로 뒤죽박죽이었던 터라 만물을 내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도 신들은 계속 나타났다. 싹트는 갈대의 신 우마시아시카비코지(宇麻志阿斯詞備比古遲神, 우마시아시카비코지노카미)가 혼돈 속에서 돋아나 세상에 나왔고, 하늘의 기틀을 잡는 신 아메노토코다치(天之常立神, 아메노토코다치노카미)가 나타나 하늘의 형태를 단단히 엮어 안정시켜 하늘 위에는 혼돈이 없게 되었다.

이상의 다섯 신을 별천진신(別天津神, 코토아마츠가미)이라고 한다.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신은 땅의 기틀을 잡는 신, 쿠니노도코다치(國之常立神, 쿠니노토코다치노카미)였다. 그가 나타나자 하늘 아래 공중에 가득하던 혼돈은 모두 아래로 가라앉아 바다가 되었다.

두 번째로 나타난 신은 풍요로운 구름의 신 토요구모(豊雲野神, 토요구모노노카미)였다. 그가 나타나자 하늘 위에 구름이 깔리게 되었다.

세 번째로 진흙의 신인 우히지니(宇此地邇神, 우히지니노카미)수히지니(須此地邇神, 수히지니노카미)가 짝을 이루어 나타났다.

네 번째로 움트는 생명의 신 츠노쿠이(角杙神, 츠노쿠이노카미)이쿠쿠이(活杙神, 이쿠쿠이노카미)가 짝을 이루어 나타났다.

다섯 번째로 남성의 신 오호토노지(意富斗能地神, 오호토노지노카미)와 여성의 여신 오호토노베(大斗乃辨神, 오호토노베노카미)가 짝을 이루어 나타나 세상에 남녀의 분별이 있게 되었다.

여섯 번째로 아름다움의 신 오모다루(於母陀琉神, 오모다루노카미)와 경외의 여신 아야카시코네(阿夜詞志古泥神, 아야카시코네노카미)가 짝을 이루어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일곱 번째로 유혹의 신 이자나기(伊耶那岐神, 이자나기노카미)와 유혹의 여신 이자나미(伊耶那美神, 이자나미노카미)가 나타났다.

이상의 신들이 일곱 번에 걸쳐 나타난 때를 신세칠대(神世七代, 카미노요나나요)라고 한다.

천상에는 여러 신들이 나타나 타카마노하라를 채웠으나, 지상에는 아직 물결치는 바다만이 있을 뿐이었다.

바다 위에는 형태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땅이 마치 물위에 기름이 뜬 것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이에 여러 신들이 의논하여 이자나기와 이자나기에게 명하였다.

바다 위에 땅이 떠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심히 언짢고 좋지가 않으니, 그대들이 굳고 단단하게 만들어 그 위에 만물이 자리 잡게 할지어다.”

이에 두 신은 여러 신들로부터 하늘의 구슬 창, 아메노누보코(天沼矛)를 받아들고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 위에 서서 바닷물에 창을 찔러넣고 휘저으며 외쳤다.

굳어라, 굳어라!”

창 끝으로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바다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땅들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두 신이 창을 들어올려 건져내자, 창 끝에서 굳어진 땅이 저절로 아래로 떨어져 단단히 쌓이고 섬이 되었다. 이 섬을 저절로 굳은 섬, 오노고로시마(淤能碁呂島)라고 한다.



참고문헌
1. 일본 신화, 오카 토모유키(다락원, 2007)
2. 고사기(古史記), 오오노아소미 야스마로, 노성환 역주(민속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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